행복하길... 행복하길.....
유자경
일반
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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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8.04.25 13:46
절친했었던, 함께 연애상담을 주고 받던 제 벗이라는 녀석이
어제 새벽에.. 제 스스로 모든 걸 끊고 도망가버렸네요.
어제 지 여친하고 헤어졌다고.. 사랑 같은거 정말 어렵고 하기 싫다고
정말 사랑 많이 했는데... 서로 나중에 서로로 인해 상처받을걸 너무나도 잘 알겠어서
그게 무서워서.. 둘 다 겁 지레 먹고 헤어졌답니다.
그러는 놈 앞에다 대고... 전 그랬죠.
'니가 정말로 놓치기 싫은 여자였더라면 정말로 그렇게 놔줬겠냐. 넌 사실 헤어지고 싶었던거다.
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라' 라고.. 참 저답게 대답을 해줬죠.
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을 좀 해보겠다더니, 얼마 있다가 제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.
힘들다, 많이 좋아하고 사랑했다, 마음이 아프다, 허무하다,
그런 말들을 쭉쭉 내뱉더니.. 갑자기 자기 혼자 좀 있고 싶다며 메신저를 나가버리더군요.
그 때 시각은 이미 새벽 1시 반... 그리고 그 때 제 남친을 비롯한 남자애들 몇몇이
그 녀석이 걱정되어 차를 몰고 그 녀석네 집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. (동갑내기라 다같이 친구거든요)
저도 그냥 신경 끄고 잤습니다.
그리고 오늘 아침.. 일어났더니 문자가 와 있더군요.
남친의 문자, 그리고.. 그 녀석의 문자.
남친에게선 새벽 5시 쯤에 그 친구 만나고 인제 집에 왔다는 문자였고,
그 녀석에게선 새벽 6시 쯤에 와 있더군요. 안녕, 잘 지내라.. 는 아주 짧은 문자...
그리고 회사 출근 했다가.. 남친에게서 연락 받고
오전 근무고 뭐고 당장 달려나가서 병원에 가서 멍때리고... 이건 뭐 눈물도 안 나오고...
원래 눈물 같은 거 헤프지 않은 저라는 거 잘 알고는 있었지만
친구 녀석 그 꼴 났는데도 울지 않는 제가 참... 기가 막히더군요.
더 우스웠던건.. 다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달려온 녀석들이 걱정되어
그 녀석들 울고 불고 하는걸 전부 다 끌고 병원 앞 해장국집에 데려가서 제 돈으로 밥 사먹였다는 것...
정작 저는 한 숟갈도 안 먹으면서.. 애들 거둬서 밥 다 먹이고 그만 울라고 다독여주고...
그들 중 한 놈이 저더러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거냐고 묻더군요.
그냥.. 멍해서인지 대답도 안 했던 것 같네요. 변명 같은거 하기 싫어서 그냥 무시하고
시간 많은 백수 친구들 거기다 앉혀놓고 전 다시 회사로 복귀했습니다.
제 남친이 가장 많이 울더군요.
지 여친은 울지도 않고 꼿꼿하게 있는데.. 가오 안 서게 저더러 자꾸 울라고 그러는데...
이렇게 한심하게 도망가 버린 놈 때문에.. 울고 싶지도 않았습니다. 눈물이 아까워서요.
제가 너무 차갑죠.. 한심하게 진짜 울어야 할 때에 울지도 못하고
회사 도착해서 다들 괜찮느냐는 안부 받고 괜찮다고 말하고 제 자리에 와 앉아서
멍하니 모니터 배경화면만 쳐다보다가 불쑥 그제서야 눈물이 나더군요..
못난 시키...
행여 제 말이 상처가 되었던거라면, 그런 나약한 놈하고 친구였다는 사실도 전 후회할렵니다.
잘 가라.. 행복해라.
모두들 명복을 빌어주세요.. 잠시나마 진심으로...
원래 친구같은 거 잘 안 만드는 성격인데, 있던 친구놈마저 이렇게 되고보니
새삼 저도 뒤돌아서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네요...
부탁이라면.. 다음 생에는 부디 사랑때문에 더는 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.
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하시고.. 졸부가 된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...
돈은 많지만 늘 외로웠고 늘 사랑이 그리웠던 녀석이거든요.
우습지만.. 제게 애인이 없었더라면, 제게 결혼하자며 청혼했을거라더군요. 언젠가 말하길...
제 대답은.. '웃기시네, 나더러 니 엄마하라고??' 였죠.
전 그 녀석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. 그저 믿었죠. 좋은 놈일거라고. 행복해질거라고요..
그래서 진심으로 좋은 여자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랬었는데...
오늘은 살아남은 기념으로 모두와 함께 술 한잔 하고 집에 왔습니다..
가뜩이나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니 기분이 몹시 묘하네요..
천국은 못갔어도 나쁜놈은 아니었으니 지옥에도 안 갔을거라 믿습니다.
모두들 위로해주시고 명복을 빌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.. ^^
가슴이 돌덩이로 막아놓은 것 처럼....
울음소리조차 나오지 않고...머릿속은 텅 비고....
심장 안에서만...울어대는 소리를....나 혼자서 듣는거죠.....
민트님은....가슴으로 먹먹하게 울고 있었군요....
고인의 명복을 빕니다.....
현실을 인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사람마다 제각기 조금 다릅니다.
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막상 그것이 현실이라고 인지하면 그때부터 눈물이 쏟아지는거죠.
저 역시 그러했으니까요.
살아남은 사람은 움직여야하니 밥 챙겨드시고 기운내시기 바랍니다.
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.